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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2026-06-26

용산사 옆 백년 약초 골목, 청초항에서 쓴 차 한 잔

타이베이 완화구 시창제224항 청초항. 청나라 이민자들이 사원에서 약첨을 뽑고 골목에서 약초를 사던 동선이 300년째 이어지는 곳. 건강보험에 흔들렸지만 3대째 주인들이 약초 아이스크림과 직접 우린 차로 살아남았다.

용산사 옆 백년 약초 골목, 청초항에서 쓴 차 한 잔

사원에서 약첨을 뽑고, 골목에서 약초를 산다

龍山寺(룽산쓰)에서 향이 타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금속 통을 흔든다. 그 안에서 떨어지는 대나무 막대 하나가 오늘의 운세를 결정한다. 막대에 새겨진 번호에 따라 사원 한쪽 창구에서 약첨(藥籤)이라 불리는 종잇조각을 받는다. 거기엔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겼는지, 어떤 약초가 필요한지 적혀 있다.

그 종잇조각을 손에 쥔 채 사원 문을 나와 서쪽으로 3분만 걷다 보면 시창제(西昌街)224항 골목 입구가 나온다. 청초항(靑草巷),푸른 약초의 골목이다.

이 동선이 대만에 뿌리를 내린 건 청나라 때다. 복건성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낯선 땅에서 아팠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사원이었고, 사원 옆에는 자연스럽게 약초를 파는 이들이 모였다. 신앙과 약초가 한 묶음이었다. 3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묶음은 풀리지 않았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한쪽은 생약초 꾸러미가 쌓여 있고, 반대쪽엔 대형 솥에서 검은 液이 부글부글 끓는다. 씁쓸하고 풀 냄새 섞인 증기가 골목 전체를 감싼다. 관광지의 달콤한 냄새가 아니다. 여기는 아직 사람이 실제로 약을 사러 오는 곳이다.

건강보험이 쓸어간 자리, 3대가 지킨 것들

청초항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1995년을 빼놓을 수 없다. 대만 전국민 건강보험이 시작된 해다.

그 전까지 이 골목은 활기가 달랐다. 일제시대에도 약초상들은 산과 들에서 직접 채집한 재료를 팔았고, 완화의 서민들은 병원 대신 이 골목에서 처방을 받다시피 했다. 그런데 건강보험이 도입되자 병원 문턱이 낮아졌다. 사람들은 굳이 쓴 약초를 달여 마시지 않아도 됐다. 손님이 빠져나갔다. 가게들도 하나둘 사라졌다.

남아있는 가게들이 버틴 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어떤 집은 2000년대 버블티 붐 때 약초를 우려낸 베이스를 팔기 시작했다. 단맛을 더하고, 젊은 손님을 다시 불러들였다. 또 어떤 집은 택배 박스를 들여놓았다. 멀리 사는 단골, 해외 교포 주문을 온라인으로 받기 시작한 것이다.

골목에서 3대째 이어지는 한 가게를 들여다보면 그 변화가 한눈에 보인다. 할아버지가 세운 가게를 어머니가 물려받고, 지금은 아들이 서 있다. 선반엔 여전히 낯선 한자 이름의 건조 약재들이 가득하지만, 계산대 옆엔 약초 아이스크림 사진이 붙어 있다. 인동초(금은화)와 쑥, 여주를 갈아 넣은 초록빛 아이스크림이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며 만들었는데 요즘은 주말이면 줄이 선다고 했다.

"맛으로 오는 사람, 건강이 궁금해서 오는 사람, 할머니가 데려왔던 곳이 생각나서 오는 사람." 주인은 손님 유형을 이렇게 나눴다. 세 번째 유형이 가장 많다고 했다.

어떻게 마시고, 어떻게 걷는가

청초항에서 처음 마시는 사람이라면 먼저 선택지를 알고 가는 게 좋다. 골목 안 여러 가게에서 현장에서 우려낸 차를 NT$20〜50에 판다.

쓴 차(苦茶)는 가장 전통적인 선택이다. 담즙처럼 쓰다. 억지로 마시면 맛이 없고, 한 모금씩 느리게 마시면 뒷맛이 깔끔하다. 해열·해독 효능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이라면 점원에게 "덜 쓴 걸로"라고 부탁해도 된다.

로젤 차(洛神花茶)는 히비스커스 꽃으로 우린 붉은 차다. 새콤달콤하고 가볍다. 쓴 차가 부담스럽다면 여기서 시작하는 게 낫다.

동과차(冬瓜茶)는 동아를 달인 음료로 단맛이 난다. 엄밀히 말하면 약초차는 아니지만 더운 날 이 골목을 걸을 때 시원하게 마시기 좋다.

청초항 자체는 걸어서 5분이면 다 볼 수 있는 짧은 골목이다. 반나절 코스로 확장하고 싶다면 이렇게 이어도 된다.

청초항에서 시작해 동삼수이가 시장(東三水街市場)으로 걷는다. 완화의 서민 시장으로 아침부터 두부, 죽, 과일을 파는 노점들이 늘어선다. 오후에는 신푸정 문화시장(新富町文化市場)으로 이동한다. 일제시대 건물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안쪽에 카페와 전시 공간이 있다. 골목 냄새와 오래된 벽, 작은 카페가 뒤섞이는 완화의 오후가 된다.


가는 길 & 알아두기

주소: 台北市萬華區西昌街224巷(타이베이시 완화구 시창제224항)

교통: MRT 반난선(板南線) 룽산쓰역(龍山寺站) 1번 출구에서 도보 약 3분. 지하철역 출구를 나오면 용산사 방향 표지판을 따라가다, 용산사 앞 광장을 지나 시창제 방향으로 꺾으면 골목 입구가 보인다.

영업시간: 가게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부 가게는 일요일 휴무. 평일 오전에 가장 많이 열려 있다.

요금: 골목 입장은 무료. 현장에서 마시는 약초차 한 잔 NT$20〜50.

팁: 약초차는 한 가게에서만 마시지 말고,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비교해서 마셔도 된다. 쓴 차를 처음 마신다면 작은 사이즈로 시작하는 걸 권한다. 날씨가 더울 땐 아이스로 주문 가능한 가게도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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