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의 건물이 기억의 공간이 되다 — 다더청의 타이완 신문화운동 기념관
일제 식민지 경찰서가 저항운동 기념관으로 바뀐 곳. 다더청 골목에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카키색 3층 건물 안에, 장웨이수이의 12번 연행과 수중 독방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디화제 코너에 서 있는 국방색 건물
다더청(大稻埕)에서 건어물 가게를 기웃거리고 카페에서 타로 라테를 홀짝이다 보면, 진짜 볼 만한 것을 그냥 지나칠 수 있다.
디화제(迪化街) 영락시장(永樂市場)에서 걸어서 5분, 3층짜리 황록색 건물이 코너에 서 있다.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게 사실 이 건물의 설계 의도였다. 1933년 완공 당시 일본 제국은 외벽 벽돌을 일부러 '국방색'으로 맞췄다. 공중에서 봤을 때 건물 윤곽이 잘 보이지 않도록.
지금은 '타이완 신문화운동 기념관'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만, 이 건물의 전생은 타이베이 북경찰서다. 타이베이에 1930년대 경찰서 건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여기가 유일하다.
의사, 운동가, 그리고 12번의 연행
장웨이수이(蔣渭水, 1891~1931)는 이란(宜蘭) 출신으로, 타이완 총독부 의학교를 졸업한 뒤 다더청에 다안(大安) 의원을 개설한 의사였다. 환자를 진찰하면서 동시에 타이완 전체를 '환자'로 진단했다. 그의 처방은 단 하나 — "교육".
1921년 10월 17일, 장웨이수이는 타이완 문화협회 창립 대회를 열었다. 경찰서장이 들이닥쳤고, 장웨이수이를 포함한 16명이 그 자리에서 연행됐다. 이게 시작이었다.
1923년에는 히로히토 황태자 방문을 빌미로 일본 당국이 타이완 의회 설치 청원 현수막을 내건 활동가들을 일제히 체포했다. 이른바 '치안경찰 사건'이다. 장웨이수이는 금고 4개월을 받았다. 평생 12번 이상 체포됐고, 40세에 장티푸스로 숨졌다. 장례 날, 5,000명 이상이 다더청에서 위안산까지 걸어서 배웅했다.
지금 그의 이름은 타이베이 고속도로 나들목에 붙어 있다. 그를 가뒀던 경찰서는 그의 정신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됐다.
건물이 직접 말해주는 세 가지
수중 독방. 1층에 있다. 천장 높이 불과 120cm. 물을 채우면 성인은 서 있을 수도, 앉을 수도 없다. 비틀린 자세로 머리만 수면 위에 내밀고 숨을 쉬어야 한다. 평상시에는 비공개고, Open House Taipei 같은 특정 행사 때만 들어갈 수 있다.
부채꼴 유치장. 파놉티콘 구조다. 간수는 중앙에서 모든 감방을 볼 수 있지만, 수감자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설계 자체가 심리적 압박을 목표로 했다.
국방색 외벽. 베이터우(北投) 가마에서 구운 황록색 홈면 벽돌. 색을 고른 이유는 위장이다. 하늘에서 봤을 때 건물이 잘 안 보이도록. 지금 봐도 그냥 오래된 건물처럼 보이는데, 그게 바로 의도였다.
교통 및 실용 정보
현재 상설전 '황금시대의 빛과 그림자'가 열려 있다. AR 망원경으로 1920년대 다더청 지도를 보면 현재 지형과 과거가 겹쳐서 보이는 체험도 있다. 입장은 무료다.
- 운영시간: 화요일~일요일 09:30~17:30(월요일 휴관)
- 요금: 무료
- 주소: 타이베이시 다퉁구 닝샤로 87호(臺北市大同區寧夏路87號)
- 교통: MRT 중산(中山)역 또는 솽롄(雙連)역에서 도보 약 10분 / 디화제 영락시장에서 도보 5분
다더청에 왔다면 디화제에서 뭔가 하나 사고 이 건물도 들러보길. 설명 없이 봐도 건물 자체가 이미 뭔가를 말하고 있다.
